1. 헤더윅 스튜디오, 기계적 도시를 유기적 풍경으로 바꾸는 건축의 마술사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이 이끄는 헤더윅 스튜디오(Heatherwick Studio)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건축·디자인 집단 중 하나다. 런던에 본사를 둔 이 스튜디오는 단순한 기능 중심의 건축을 넘어서, 감성적 경험과 조형적 아름다움, 기술과 자연의 조화를 결합하는 디자인 언어로 유명하다. 이들이 추구하는 건축은 직선과 반복으로 구성된 전통적 도시건축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유기적 형태, 실험적 재료, 공공성과 예술성의 융합을 바탕으로 도시의 풍경을 새롭게 해석한다.
대표작으로는 뉴욕 허드슨야드에 위치한 조각형 보행 구조물 '베슬(Vessel)', 싱가포르 난양공대의 러닝허브, 런던의 올림픽 성화대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공공성이 강한 장소에 설치되었고,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체험 가능한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헤더윅은 "우리는 사무실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철학은 이번 노들섬 리디자인 프로젝트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2. 노들섬 리디자인, 어떻게 헤더윅의 스타일이 담겼을까?
2024년, 서울시는 노들섬을 한강의 중심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국제설계공모를 진행했고, 최종 당선작으로 헤더윅 스튜디오의 안이 선정되었다. 많은 건축가들이 기능성과 상징성을 앞세운 안을 제출한 반면, 헤더윅 스튜디오는 **‘건물이 아니라 풍경을 제안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존 건물 위에 또 다른 구조를 얹거나, 완전히 새 건축을 세우는 대신, 지형과 동선, 식생과 건축을 융합한 ‘거대한 공공정원’을 설계한 것이다.
디자인 안의 핵심은 지붕을 덮는 지형적 곡선과 보행자의 흐름에 최적화된 루트 설계다. 노들섬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구름다리는 기존 자동차 중심의 접근성을 걷는 사람 중심으로 바꾸며, 곳곳에 텃밭, 수직정원, 야외 무대 등을 배치했다. 한강과 맞닿는 수변공간은 인위적인 벽체가 아니라 곡면 테라스형 데크로 구성되어, 물과의 경계가 부드럽게 연결된다.
헤더윅의 대표적 스타일인 ‘경계를 흐리는 건축’은 노들섬에서 건물과 식물, 구조와 풍경, 이동과 체류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작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이번 노들섬은 건축물이면서 공원이고, 조형물이면서 보행 루트이며, 예술 공간이면서 생태계의 일부가 되는 복합체다.
3. 기존 한강과는 다른 뷰, 노들섬이 기대되는 이유
서울에는 이미 수많은 한강공원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선형적, 기능 중심적, 물리적 확장에 치우친 공간들이다. 반면, 새롭게 재탄생할 노들섬은 ‘풍경 속의 건축’이라는 개념을 실현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그동안 한강의 공간들이 휴식과 운동, 나들이 공간으로 활용되었다면, 노들섬은 문화, 생태, 도시재생이 공존하는 복합 예술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도심 속 뷰를 반대로 당긴 구조’**다. 보통은 한강 너머 서울을 바라보는 뷰가 일반적이었지만, 헤더윅의 설계는 한강 위에서 도시를 향해, 그리고 하늘을 향해 시선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지형과 건물의 곡선이 시선을 수직·수평으로 이끌며, 방문자는 마치 한강 위에 떠 있는 전망대처럼 도시를 감각적으로 재해석하게 된다.
또한 건축 전체가 계단식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야외공연, 영화 상영, 퍼포먼스, 전시 등 다양한 문화활동이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 있는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이제 ‘한강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묻는 대신, ‘한강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확장되는 구조다. 기능이 아닌 상상력을 중심으로 설계된 공간이 바로 새 노들섬이다.
4. 한강은 단지 강이 아니다 – 문화가 흐르는 도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한강은 단지 서울을 가르는 물줄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한강은 정치, 산업, 문화, 휴식 등 도시의 기억과 감정이 교차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한강은 더 이상 ‘차를 타고 가는 드라이브 코스’가 아니라, 도시민의 삶 속에 깊이 들어온 생활의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의도 밤도깨비 야시장, 반포 달빛무지개분수, 뚝섬 재즈 페스티벌 같은 다채로운 콘텐츠가 매년 열리고 있고, 그 중심에 노들섬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과거 노들섬은 한강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활용도는 낮았다. 단절된 동선, 활용되지 않는 건물, 주변 경관과의 단절은 이곳을 ‘잊힌 섬’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헤더윅 스튜디오의 디자인은 도시와 자연, 사람과 구조를 연결하는 새로운 실험이며, 그 실험은 한국의 도시계획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 이 노들섬 한복판에서 서울패션위크의 오프닝 쇼가 열린 적이 있다는 점이다. 런웨이가 한강 위로 뻗어 나가고, 모델들이 강물과 도시 야경을 배경으로 걸어 나오는 그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서울의 새로운 얼굴을 각인시켰다. 바로 그런 감각, 그런 가능성을 건축적으로 영구히 정착시키는 프로젝트가 이번 노들섬이다.
한강은 이제 새로운 시대의 도시에 어울리는 "문화적 수변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노들섬의 변화는 그 시작점이 될 것이다. 건축은 단지 공간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경험할 수 있는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행위다. 그리고 헤더윅 스튜디오는 그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방법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건축가 중 하나다.
5. 마치며
대표적인 문화적 수변 플랫폼으로는 "런던의 사우스뱅크(Southbank Centre)"가 있다. 템스강을 따라 펼쳐진 이 공간은 공연장, 미술관, 야외 광장, 스트리트 마켓이 함께 어우러지며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문 대표 사례다. 서울 노들섬 역시 이와 비슷한 비전을 갖고 리디자인에 착수했다. 2024년 국제공모를 통해 헤더윅 스튜디오의 설계안이 선정됐고, 2025년 상반기부터 단계적 공사에 들어가 2027년 완공 예정이다. 올해부터, 서서히 시작하는 단계지만 2-3년 후의 보다 아름다워진 서울, 한강을 꿈꾸며 단순한 공원이 아닌, 문화와 자연이 함께 흐르는 복합적 도시 플랫폼으로서의 노들섬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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