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디자인 5

서울 사대문 안의 궁궐, 그 구조가 전하는 왕의 철학

1. 궁궐은 ‘왕이 머무는 집’이 아니다 – 권력이 설계한 도시적 장치서울을 걷다 보면, 뜻밖에 넓은 공간이 갑자기 열리는 순간이 있다.광화문광장 뒤로 펼쳐지는 경복궁, 한옥 지붕이 어지럽게 겹쳐진 창덕궁,정동길 끝에 자리한 덕수궁, 그리고 유난히 조용하고 낮은 담장에 둘러싸인 창경궁.이 네 곳은 모두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궁궐’이지만,같은 시대에 같은 왕이 사용한 공간이 아니다.궁궐은 단순한 ‘왕의 거처’가 아니다.궁궐은 통치 철학의 표현, 권력의 시각화, 신하와 백성을 향한 메시지다.그 구조는 지극히 계산되어 있고,그 위치는 우연히 정해지지 않았다.사대문 안에만 네 개의 궁궐이 존재했다는 것은단지 실용을 위한 중복이 아니며,정치적 유산, 철학적 갈등, 왕실의 생존 방식이 담겨 있는 결과물이다.이 ..

건축디자인 2025.06.28

왜 유럽 건물은 다닥다닥 붙어있고, 한국 건물은 떨어져 있을까?

1. 문화가 만든 거리, 법이 만든 틈 – 건축 간격의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해외여행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도시의 풍경’이다. 특히 유럽을 여행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건물들이 전부 다 붙어있고, 마치 하나의 벽처럼 보인다"고.실제로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독일 베를린 같은 유럽 도시는 건물과 건물 사이가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연속된 거리를 보여준다. 반면, 한국의 도시들은 다르다. 일반적인 상업지구나 주거지에서도 건물 사이에 1미터 이상 떨어진 틈이 거의 의무처럼 존재한다. 좁은 골목길, 담벼락 사이, 혹은 주차공간으로 활용되는 그 ‘틈’은 이제 한국 도시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이 차이는 단순한 디자인 취향의 차이가 아니다. 역사, 도시계획, 재료, 법규, 기후와 지형 등 복합..

건축디자인 2025.06.25

헤더윅 스튜디오가 다시 디자인한 노들섬 – 한강의 건축적 상상력을 다시 열다

1. 헤더윅 스튜디오, 기계적 도시를 유기적 풍경으로 바꾸는 건축의 마술사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이 이끄는 헤더윅 스튜디오(Heatherwick Studio)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건축·디자인 집단 중 하나다. 런던에 본사를 둔 이 스튜디오는 단순한 기능 중심의 건축을 넘어서, 감성적 경험과 조형적 아름다움, 기술과 자연의 조화를 결합하는 디자인 언어로 유명하다. 이들이 추구하는 건축은 직선과 반복으로 구성된 전통적 도시건축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유기적 형태, 실험적 재료, 공공성과 예술성의 융합을 바탕으로 도시의 풍경을 새롭게 해석한다.대표작으로는 뉴욕 허드슨야드에 위치한 조각형 보행 구조물 '베슬(Vessel)', 싱가포르 난양공대의 러닝허브, 런던의 올림픽 성화대..

건축디자인 2025.06.24

신흥시장, 해방촌 달동네의 재탄생 – 슬레이트 지붕 아래 피어난 도시의 감각

1. 낡은 시장 골목이 ‘일상적 문화 공간’으로 바뀌기까지서울 용산 해방촌 안에서도 ‘신흥시장’은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공간이었다. 해방 이후 형성된 이 시장은 실향민과 피난민들이 모여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만든 공동체였다. 신흥시장은 상가보다도 창고에 가까운 구조였고, 대부분 1층 높이의 판잣집에 슬레이트 지붕이 얹혀 있었다. 비가 새고, 천장이 낮아 낮에도 어두컴컴했던 내부는 지나가는 사람마저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수십 년 동안 고쳐 쓴 구조물들은 외벽이 들뜨고, 전선은 얽혀 있었으며, 건물의 기능보다는 생존을 위한 공간에 가까웠다.하지만 어느 순간, 이 공간을 다시 바라보는 눈들이 생겨났다. 낡고 어두운 시장 골목이 ‘고쳐 써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자..

건축디자인 2025.06.24

디아드 청담, 건축의 철학이 사라진 순간 – 아름다움에서 안전함으로 물러선 디자인의 아쉬움

1. 디아드 청담, 기대를 모았던 도시 건축의 상징2024년, 청담동 한복판에 들어설 새로운 건축물 ‘디아드 청담’이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의 설계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건축계는 조용히 술렁였다. 그는 파리 국립도서관과 베를린 올림픽 수영장, 인천의 트라이볼 등을 통해 건축을 풍경 속에 스며들게 하고, 구조와 공간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작업을 지속해 온 세계적인 건축가다. 특히 그는 **'비물질성(immateriality)'**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형태보다 감각, 외피보다 흐름을 중시하는 건축 철학을 실현해 왔다. 이 철학은 도시와 건축, 사용자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디아드 청담 역시 이러한 철학의 연장선에 있었다. 건물의..

건축디자인 2025.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