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낡은 시장 골목이 ‘일상적 문화 공간’으로 바뀌기까지
서울 용산 해방촌 안에서도 ‘신흥시장’은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공간이었다. 해방 이후 형성된 이 시장은 실향민과 피난민들이 모여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만든 공동체였다. 신흥시장은 상가보다도 창고에 가까운 구조였고, 대부분 1층 높이의 판잣집에 슬레이트 지붕이 얹혀 있었다. 비가 새고, 천장이 낮아 낮에도 어두컴컴했던 내부는 지나가는 사람마저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수십 년 동안 고쳐 쓴 구조물들은 외벽이 들뜨고, 전선은 얽혀 있었으며, 건물의 기능보다는 생존을 위한 공간에 가까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공간을 다시 바라보는 눈들이 생겨났다. 낡고 어두운 시장 골목이 ‘고쳐 써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자산’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신흥시장은 대대적인 철거나 고층 개발 없이, 기존 건축물의 구조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리모델링됐다.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투명한 아크릴 지붕을 얹어 햇살을 들였다. 동시에 실내 천장을 높여 기존의 갑갑한 내부를 개방감 있는 공간으로 재구성했고, 벽체는 철거하지 않고 안에서 새롭게 마감했다. 이러한 최소한의 개입은 시장의 과거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감각을 담을 수 있는 유연한 틀을 만들어냈다.
2. ‘빛’과 ‘높이’가 만들어낸 공간의 전환
신흥시장 리모델링의 핵심은 단순히 예쁜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공간 구조 자체를 바꾸는 최소한의 리디자인이 본질이었다. 기존의 슬레이트 지붕은 낮고 무거웠으며, 햇빛을 거의 들이지 못해 실내는 늘 어두웠다. 내부 천장은 평균 2.2미터 안팎으로, 사람의 눈높이보다 약간 높은 정도였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도 답답했고, 공기의 흐름조차 막혔다. 그러나 리모델링 이후에는 지붕을 철거하고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의 투명 지붕을 얹으면서 자연광이 깊숙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건물 상부 구조를 일부 철거하고 높이 약 3미터 이상의 오픈 천장 구조를 도입하면서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 결과적으로 같은 평수의 가게라도, 빛과 높이만으로 완전히 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구조는 카페, 갤러리, 소규모 공방, 독립 출판사 등 다양한 콘텐츠가 입주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실제로 현재 신흥시장에는 브런치 카페, 수제 맥주 바, 일러스트 숍 등 2030 세대의 창업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다. 그들은 이곳을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라 ‘작지만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 보고 있다.
3.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
그러나 신흥시장의 성공이 곧 긍정적인 도시 재생의 전형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지역 임대료는 눈에 띄게 올랐고,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던 원주민 일부는 더 이상 그 공간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신흥시장에서 장사하던 노점상이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높은 임대료와 인근 부동산 개발 흐름 속에서 점차 밀려났고, 그 자리는 더 세련된 인테리어와 가격대를 가진 상점들이 차지했다. 이는 도시 재생 과정에서 반복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고질적 문제를 다시 한 번 드러낸다.
도시를 바꾸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건물만이 아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삶의 방식까지 존중받을 때 비로소 도시의 정체성이 유지된다. 신흥시장은 분명 감각적인 변화를 통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지만, 이 흐름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이곳의 역사와 기억은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부족하다. 해방촌 전체가 그렇듯, 신흥시장 역시 과거와 현재, 원주민과 유입인구, 소유자와 임차인 사이의 균형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도시재생이 성공이 되기 위해선, 리모델링 이상의 복합적인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
4. 신흥시장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도시 재생의 방향
신흥시장은 분명 서울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개발이 아닌 ‘재해석’이라는 접근으로 공간을 살려냈다는 점에서, 이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시도를 보여줬다. 특히 전체 구조를 철거하지 않고, 기존 골조를 보존한 채 내부와 지붕만을 교체하는 방식은 환경적·경제적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모델이다. 여기에 1인 창업자들이 자발적으로 이 공간에 들어와 콘텐츠를 채우고, SNS를 통해 장소의 정체성을 확산시키는 과정은 과거의 일방적인 도시계획과는 분명히 다른 흐름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사회적 공존과 균형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도시재생은 더 이상 ‘예쁜 건물 몇 채’를 만드는 일에 그쳐서는 안 된다. ‘누구와 함께 이 변화를 만들어갈 것인가’, ‘이 공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신흥시장은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다. 여전히 진행 중인 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선, 그 골목을 걷는 이들이 ‘과거의 온도’와 ‘현재의 감각’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도시가 진정 살아있으려면, 건물만이 아니라 기억과 관계까지 함께 리모델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5. 마치며
신흥시장과 비슷한 방식으로 리모델링에 성공한 사례로는 익선동과 문래동을 들 수 있다. 익선동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주거지 중 하나로, 한동안 개발에서 소외되어 방치되었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젊은 기획자들과 디자이너들이 기존 한옥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내부만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해 감각적인 카페, 편집숍, 레스토랑으로 재탄생시켰다. 익선동은 철거가 아닌 보존을 통한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신흥시장과 유사한 흐름을 보여준다. 반면 문래동은 철공소 밀집 지역으로 산업적 풍경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 거친 분위기 속에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 공연장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두 곳 모두 대규모 개발 없이, 기존의 물리적 틀과 기억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콘텐츠를 유입시켜 ‘도시적 감도’를 끌어올린 사례다. 신흥시장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공간을 부수지 않고 살려내는 방식이 도시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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