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디자인

왜 유럽 건물은 다닥다닥 붙어있고, 한국 건물은 떨어져 있을까?

silentko2531 2025. 6. 25. 21:08

1. 문화가 만든 거리, 법이 만든 틈 – 건축 간격의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해외여행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도시의 풍경’이다. 특히 유럽을 여행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건물들이 전부 다 붙어있고, 마치 하나의 벽처럼 보인다"고.
실제로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독일 베를린 같은 유럽 도시는 건물과 건물 사이가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연속된 거리를 보여준다. 반면, 한국의 도시들은 다르다. 일반적인 상업지구나 주거지에서도 건물 사이에 1미터 이상 떨어진 틈이 거의 의무처럼 존재한다. 좁은 골목길, 담벼락 사이, 혹은 주차공간으로 활용되는 그 ‘틈’은 이제 한국 도시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이 차이는 단순한 디자인 취향의 차이가 아니다. 역사, 도시계획, 재료, 법규, 기후와 지형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반영된 결과다. 이 글에서는 왜 유럽은 건물을 붙이고, 한국은 띄우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부터 현재적 의미, 그리고 각각의 장단점까지 분석해본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유럽식 건물들의 입면

2. 유럽은 왜 건물을 다닥다닥 붙였을까?

2-1. 중세 도시의 밀집형 발전

유럽의 도시는 대부분 중세시대에 형성된 중심부를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도시의 시작점은 성당, 성곽, 장터 등이었고, 그 주변으로 상업과 주거가 결합된 다층 건물이 자연스럽게 붙듯이 형성되었다. 당시에는 도시 공간이 귀했고, 외부의 침입이나 도난을 막기 위해 좁고 밀집된 구조가 안전상의 이유로 선호되었다. 도시화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이미 건물 간의 간격은 최소화된 것이다.

2-2. 벽식 구조의 벽 공유 시스템

유럽의 전통 건축은 **벽돌이나 석재를 사용한 ‘벽식 구조’**가 기본이었다. 벽이 곧 구조체 역할을 했기 때문에, 옆집과 벽을 공유하면 시공비를 줄이고 구조적으로 안정성도 높일 수 있었다. 이는 테라스하우스, 타운하우스, 연립주택 등으로 발전했고, 건물 간의 ‘간격’이 아니라 ‘벽 공유’가 표준화됐다.

2-3. 법적으로도 건물 간 거리 규정이 거의 없음

많은 유럽 국가는 도시 전통 경관 보존과 밀접한 이유로 건물 간 최소 이격 거리 규정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상하수도, 방화구역만 확보된다면 연속된 건축이 도시 경관에 더 어울린다고 판단한다. 파리, 피렌체,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는 이 방식으로 밀집형 도시풍경을 유지하고 있다.


3. 한국은 왜 건물 사이에 틈을 두게 되었을까?

3-1. 화재·재난에 대한 역사적 경험

한국은 유럽과 달리 목조 가옥 중심의 전통을 이어왔다. 목재는 열과 불에 약하고, 불이 한 번 번지면 주변까지 빠르게 확산된다. 20세기 중후반까지도 대도시에서 반복된 화재는 건물 간 방화구간 확보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만들었고, 이후 건축법에서 최소 이격거리 규정을 의무화하는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

3-2. 구조적 방식의 차이 – 벽체가 아닌 기둥 구조

한국의 현대 건축은 기둥-보(철근콘크리트) 구조가 일반적이다. 즉, 건물 외벽이 구조체 역할을 하지 않고, 옆 건물과 벽을 공유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단열, 방수, 방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라도 건물 외부를 분리하고 공기층을 둬야 하는 구조다. 이로 인해 건축 구조적으로도 '붙이는 것'이 불리해진다.

3-3. 한국의 지형과 단독주택 위주 개발

한국은 산지가 많고 평지가 적은 지형, 그리고 오랜 기간 단독주택 위주의 저밀도 개발을 경험해왔다. 도시 외곽에서 건물이 띄엄띄엄 들어서며, 서로 붙어 있어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 패턴은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도 반영되어, 채광과 통풍, 조망권 확보를 위한 일정 간격 확보 설계가 주류가 되었다.

3-4. 건축법과 도시계획 조례의 영향

현재 한국의 건축법은 용도지역, 대지 경계선, 방화벽 등을 기준으로 건물 간 최소 이격 거리를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주거지역에서는 건물 외벽에서 대지 경계선까지 최소 1~2미터 이상 띄우는 것이 법적으로 요구되며, 이로 인해 '틈'이 자연스럽게 도시 전반에 자리 잡았다.


4. 유럽식 밀착형 건축 vs 한국식 이격형 건축 – 장단점 비교

구분유럽 밀착형 건축한국 이격형 건축
✅ 장점 도시미관 통일성, 공간효율성, 단열효과 채광/통풍 유리, 방재성 우수, 독립성 확보
⚠️ 단점 통풍/채광 불리, 화재 확산 위험, 사생활 침해 도시미관 혼란, 공간 낭비, 주변 소음 영향

 

유럽의 장점은 일관된 스카이라인과 건축의 연속성에 있다. 같은 높이와 비슷한 재료, 거의 붙은 구조는 걷고 싶은 거리, 풍경이 되는 도시를 만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생활 침해와 공기순환의 불리함, 창문이 바로 옆 건물을 마주보는 문제 등도 발생한다.

한국식 이격 구조는 개인 중심의 공간을 보장한다. 채광과 환기, 방화안전 측면에서 유리하고, 소유권 구분이 명확하다. 하지만 도시 차원에서는 건물 외관이 제각각이고, 비효율적인 공간 사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5. 결론 – 도시 건축의 간격은 문화의 거리다

건물 사이의 간격은 단지 ‘디자인’이나 ‘법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가에 대한 문화적 결과다. 유럽은 긴 시간에 걸쳐 사람과 사람이 가까이 붙어 살아야 했고, 그 결과 연속된 건물과 거리 중심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반면 한국은 독립성과 안전, 기능 중심의 도시화를 추구하면서 틈을 만드는 도시가 되었다.

건축의 미래는 어느 한 방식의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오히려 이 두 방식의 장점을 적절히 혼합해, 도시는 더 유연하고 다양하게 설계될 수 있다. 한국도 점차 담벼락 없는 거리, 도시적 연속성이 있는 거리 설계를 시도하고 있고, 유럽 역시 개인 공간의 확보와 방재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 중이다.

건물 간의 간격은 결국 도시의 얼굴이자,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다. 유럽의 밀착형이든, 한국의 이격형이든, 그 속에 담긴 가치는 사람을 위한 도시인가, 공간을 위한 도시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