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디자인

디아드 청담, 건축의 철학이 사라진 순간 – 아름다움에서 안전함으로 물러선 디자인의 아쉬움

silentko2531 2025. 6. 24. 00:49

디아드 청담, 단순해져버린 입면 디자인

1. 디아드 청담, 기대를 모았던 도시 건축의 상징

2024년, 청담동 한복판에 들어설 새로운 건축물 ‘디아드 청담’이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의 설계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건축계는 조용히 술렁였다. 그는 파리 국립도서관과 베를린 올림픽 수영장, 인천의 트라이볼 등을 통해 건축을 풍경 속에 스며들게 하고, 구조와 공간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작업을 지속해 온 세계적인 건축가다. 특히 그는 **'비물질성(immateriality)'**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형태보다 감각, 외피보다 흐름을 중시하는 건축 철학을 실현해 왔다. 이 철학은 도시와 건축, 사용자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디아드 청담 역시 이러한 철학의 연장선에 있었다. 건물의 입면은 투명과 반투명을 교차시켜 빛의 변화에 따라 건축이 스스로 변형되는 듯한 시각적 경험을 유도했고, 곡선형 매스는 청담의 단조로운 도시 풍경에 유기적인 리듬감을 제공하려 했다. 도시를 구성하는 하나의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시간과 빛, 사용자 동선에 따라 ‘반응’하는 건축을 제안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분명히,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건축의 새로운 방향성을 실험하는 드문 기회였다.

그러나 지금 완공된 디아드 청담의 모습은 그러한 야심찬 철학의 잔재를 찾기 어려운, 안전한 사각형 매스와 평범한 외장재의 조합으로 귀결됐다. 도미니크 페로가 그려낸 감각의 흐름은 사라졌고, 도시와의 긴장감을 조율하던 설계 언어는 현실이라는 벽에 가려졌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하나의 건축적 철학이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실현되지 못한 과정을 지켜본 셈이다.

 

 

2. 입면 디자인은 왜 후퇴했는가 – 건축가의 의도와 현실의 괴리

건축이라는 것은 단순히 예술적 표현에 그치지 않고, 법, 비용,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라는 현실의 벽을 마주하게 된다. 디아드 청담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당초 설계안에서 보여주던 유려한 곡선과 비정형 매스는, 국내 건축법규나 구조검토, 시공 난이도에 따라 조정이 불가피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런 현실적 조정이 단순한 '최적화' 수준을 넘어 '전면 철회'에 가까운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특히 현재 완공된 외관은 단순한 매스 조정이 아닌, 아예 설계철학이 지워진 느낌에 가깝다.

건축가는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려 한다. 디아드 청담의 초기 디자인에는 분명한 내러티브가 있었고, 그것은 외부의 곡선과 유리 파사드를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형태는 그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는다. 도리어 건축가의 ‘개입’을 철저히 제거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건축가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결과로도 해석될 수 있으며, 도시 맥락에서 봤을 때도 일관된 정체성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건축의 본질이 퇴색되었다.

 

 

3. '비용'이라는 이름의 침묵 – 조용히 후퇴한 아름다움

국내 건축 시장에서 흔히 반복되는 비극 중 하나는, 초기에 제안된 설계의 30%만 살아남는다는 점이다. 시공 과정에서 예산 문제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조형성과 마감재다. 특히 외부 파사드는 사용자의 체감도가 낮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ROI(Return on Investment)와 직접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비용’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디아드 청담 역시 그런 방식으로 ‘안전한 디자인’으로 정리된 듯하다.

그러나 도시 건축은 단순한 개인의 자산이 아니다. 건축물은 공공에게 시각적·정서적 영향을 주는 도시의 일부이며, 특히 청담동처럼 상징성이 큰 지역에 들어서는 건물은 주변 환경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다. 멋진 건축은 사람을 멈추게 하고, 사진을 찍게 하고,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디아드 청담의 지금 모습은 그런 경험을 제공하기 어렵다. 도시를 흘러가는 공간으로 만들지, 머물게 하는 공간으로 만들지는 결국 건축주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 선택은 이번에, 안타깝게도 ‘후자’가 아닌 ‘전자’를 택한 듯하다.

 

 

4. 건축가는 이름이 아니라, 철학으로 기억된다

이번 디아드 청담 사태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유명 건축가를 섭외하는 것만으로 건축이 완성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건축가의 디자인을 존중하고, 그것이 구현될 수 있도록 의사결정 구조가 설계되어야 비로소 진짜 ‘좋은 건축’이 도시 속에 나타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빛나는 건축이 도시를 바꾸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건축가의 이름값'은 유지하고, '디자인 철학'은 삭제하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반복적인 유리 커튼월과 회색 매스가 도시를 메우는 것이 이상적인가? 아니면, 비록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사람을 생각하고, 주변 도시 맥락과 어울리며,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내는 건축이 더 가치 있는가? 디아드 청담의 사례는 이러한 질문을 다시금 우리 사회에 던져준다. 그리고 이 질문은 단순히 건축의 영역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모든 분야에 확장되어야 한다.

 

 

5. 마치며

서울의 여러 건축물들은 과거에도 유사한 과정을 겪어왔다. 당초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D빌딩은 결국 단순 사무실로 변모했고, 공공 프로젝트였던 H센터도 예산 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정체성을 잃었다. 이런 사례들은 단지 디자인의 수정이 아니라, 철학이 배제된 도시의 현실을 보여준다. 건축이 단순한 공간 제공이 아닌, 문화를 담는 그릇이 되기 위해선 설계의 의도가 끝까지 존중받아야 한다. 건축가의 손끝에서 시작된 사유가 도시에 온전히 구현되는 사회, 그 안에서 시민들이 공간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도시야말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