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회

하늘을 찌른 롯데타워, 도시와 호흡한 현대 GBC – 건축이 말하는 시대의 철학

silentko2531 2025. 6. 26. 02:30

롯데타워 사진.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1. 롯데타워, 대한민국의 수직 상징이 된 건축물

서울 송파구에 우뚝 솟은 롯데월드타워(123층, 555m)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2025년 기준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빌딩이다.
(2025년 기준 순위: 1. 부르즈 칼리파(828m), 2. 메르데카118(678.9m), 3. 상하이타워, 4. 아브라즈 알 바이트, 5. 핑안금융센터, 6. 롯데타워)

롯데타워는 단순히 높은 건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기술력의 상징’으로 기획된 대표 건축물이었다.
그 안에는 호텔, 전망대, 오피스, 쇼핑몰, 공연장, 오피스텔까지 복합적으로 구성돼 있어
현대 초고층 건축이 상업과 라이프스타일의 모든 기능을 집약한 구조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왜 높은 건물을 지으려 하는가?
그리고 이제도 여전히 ‘높이’가 건축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2. 고대에서 현대까지, 건축의 높이가 상징했던 것들

고대부터 인간은 ‘높이’를 통해 권위와 위엄을 드러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바벨탑의 신화, 유럽 고딕 성당의 첨탑, 동아시아의 불탑과 궁궐 전각…
이 모두는 신, 권력, 왕권에 가깝기 위한 상징적 시도였다.

중세의 성당은 높이 올라갈수록 신에 가까워진다는 믿음을 반영했으나 재료적 한계가 있었다.

석재와 목재가 주 재료였고, 구조적 한계가 있어 일정 높이 이상을 쌓아 올리는 데 제한이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오면서 철근, 콘크리트, 철골 구조 기술이 등장하며 건축의 수직한계가 급격히 사라졌다. 특히 엘리베이터와 강철 프레임 기술은 마천루 탄생의 핵심이다. 높아질수록 이동이 불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엘리베이터는 초고층을 현실로 만들었고, 철골 구조는 건축의 자중을 획기적으로 줄이며 수십 층 이상 건물을 설계할 수 있게 했다. 20세기 초 뉴욕과 시카고에서 시작된 마천루 경쟁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기술의 결정체이자, 도시 수용력 확대의 전략이기도 했다. 롯데월드타워 역시 이 계보 위에 놓이며, 한국의 기술력과 시공능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건축적 선언이었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931),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1973)는
‘기업의 위세’와 ‘도시의 경제력’을 수직으로 표현한 대표 사례다.

이후 아시아로 중심이 이동하면서,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 중국의 상하이 타워,
그리고 대한민국의 롯데타워까지 그 경쟁은 이어졌다.
높이 경쟁은 국가 간 ‘기술력 과시’와 도시 브랜드 전략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고,
건축은 더 이상 기능만이 아닌 ‘국가 정체성의 표현’이 되었다.


3. 하지만 이제는, 더 높다고 더 좋은 건물이 아니다

최근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현대자동차의 신사옥 ‘GBC(글로벌 비즈니스 센터)는 당초 롯데타워보다 더 높은 105층(약 570m)**로 추진되었으나,
2024년 그 계획을 철회하고, 3개의 낮은 건물로 구성된 새로운 설계안을 발표했다.

이 결정은 단순한 스펙 다운이 아니다.
건축의 ‘상징성 중심 사고’에서 ‘사람 중심 사고’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현대차는 “더 이상 수직의 경쟁이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도시와 호흡하는 건축을 원한다”는 취지로
높은 건물 대신 도시와 어우러진 복합적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비슷한 흐름은 세계적으로도 나타난다.
애플의 본사는 ‘도넛 형태의 낮은 원형 캠퍼스’를 선택했고,
구글 역시 자연 채광, 개방형 중정, 저층 캠퍼스형 공간을 선호한다.
이는 수직적 권위보다 수평적 연결, 내부 복지와 창의성 강화,
지속가능성과 지역사회 연계를 우선하는 철학적 전환이다.

현대신사옥 GBC사진. 사람이 지상에서 다양한 연결고리가 생겨나는 사진

4. 건물은 이제 ‘얼마나 높냐’가 아니라 ‘얼마나 연결되는가’가 중요해졌다

현대 건축은 ‘최고 높이’보다 최고 체험, 최고 공유성, 최고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
그 변화는 네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4-1. 커뮤니티 중심 공간 구성

건물이 외부에 상징을 말하기보다는 내부에서 사람들이 머물고 연결되는 방식을 중시한다.
대형 기업 사옥, 캠퍼스, 공공시설 등은 모두 개방성과 복합성을 지향한다.

4-2. 지속가능성(ESG 관점)

초고층은 에너지 효율과 유지 관리 비용에서 비효율적이다.
이제는 탄소 배출, 자원 순환, 자연 통합 등 지속가능한 설계가 더 높은 가치로 평가된다.

4-3. 도시와의 관계성_GBC를 예시로 든다면

현대차 신사옥(GBC)의 새로운 설계는 단순히 건물 높이를 낮춘 것이 아니라, 도시와 사람의 관계를 다시 설계한 것에 가깝다.
특히 핵심은 ‘지상 공간의 사람 중심 재편’이다.
GBC 부지는 서울 강남권에서도 가장 차량 통행이 많은 영동대로와 직접 연결되는 구역인데, 현대차는 이 영동대로를 지하화하고, 지상에는 대규모 녹지광장을 조성하는 계획을 함께 발표했다.
즉, 차량은 지하로 이동하고, 사람은 자연과 함께 걷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건물 그 자체보다 도시의 맥락과 연결되는 ‘공공성 중심 설계’로의 이동을 상징한다.
GBC는 업무공간이면서도 시민에게 열린 광장을 제공하고, 기존에는 단절되었던 삼성동 일대와 봉은사역, 잠실, 코엑스 일대를 하나의 거대한 생활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철학은 더 이상 "얼마나 높이 지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도시와 연결되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건축이 평가받는 시대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4-4. 브랜드의 철학 반영

이제 사옥은 기업의 위세가 아니라, 브랜드 철학을 말하는 수단이 되었다.
현대차의 저층 사옥, 애플의 원형 본사, 삼성의 친환경 연구동 등은 모두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힘이 아니라 연결과 창의”라는 메시지를 건축으로 전달한다.


5. 결론_ 가장 높은 건물이 가장 위대한 건물은 아니다

롯데월드타워는 여전히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대한민국 건축기술의 상징이다.
하지만 동시에, 건물의 높이가 곧 권위이고 위대함을 말하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건축은 이제 물리적 높이보다, 얼마나 도시와 조화롭게 공존하는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는가, 그리고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로 평가받는다.

고대에는 하늘에 가까울수록 신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근대에는 더 높이 쌓을수록 기술과 자본이 위대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는다.
서로를 바라보고, 함께 머물 수 있는 도시의 높이,
그것이 진짜 위대한 건축이 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