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회

“내 기분은 역이 정한다?” – 서울 지하철역 설계와 감정의 관계

silentko2531 2025. 6. 27. 08:40

1. 매일 스쳐 지나가는 공간, 그러나 기분에는 큰 영향

서울 시민의 상당수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지하철에서의 이동과 대기에 사용한다.
특히 출퇴근 시간은 고정 루틴의 일부로 반복되기 때문에, 지하철역이 주는 환경적 자극은 누적되어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특정 역에서 기분이 더 가라앉거나, 반대로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다.
공간의 구조와 설계, 색상, 조명, 소음, 흐름의 질서는 모두 사람의 감정에 작용하는 환경적 요인이다.

 

2. 실제 연구로 본 ‘공간과 감정’의 상관관계

2-1. 국내 연구 사례

서울연구원은 2021년 「도시 공간과 이용자의 정서 반응 연구」에서
지하철 이용자 500명을 대상으로 역 환경에 따른 정서 반응을 조사했다.
그 결과, ‘자연광이 없고 폐쇄감이 큰 역일수록 부정적 감정 반응이 증가’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특히 어두운 조명, 복잡한 동선, 시야가 막힌 구조는 무의식적으로 불안, 긴장, 회피 감정을 유도한다고 나타났다.

또한 “색채와 벽면 질감이 부드러운 역일수록 이용자의 정서적 안정감이 향상된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는 단지 인테리어가 예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환경 심리학적으로 사용자 감정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2-2. 해외 연구 사례

미국 스탠퍼드 대학 환경디자인센터는 2018년, “공공교통 환경이 스트레스 수치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서
지하철역의 구조적 혼잡도와 폐쇄성, 채광 유무, 재료 색감에 따라 이용자의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에 차이가 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불규칙한 계단 배치, 회색 콘크리트 구조, 복잡한 동선"은 지각 가능한 불쾌감을 유발한다고 분석됐다.

 

3. 서울 지하철은 어떤 구조인가?

서울의 지하철역은 대체로 1970~90년대에 대규모로 건설되었으며,
당시에는 기능성과 효율성 위주의 설계가 중심이었다.
즉, 빠른 환승, 적은 시공비, 내구성 확보가 우선이었고,
이용자의 심리적 경험은 고려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서울 지하철의 주요 구조적 문제는 다음과 같다:

항목특징심리적 영향
좁고 일자형 동선 환승 편의성 확보 위주 긴장과 단조로움 유발
자연광 없음 지하 구조 특성상 채광 부재 폐쇄감, 우울감 증가
회색 콘크리트/무채색 벽 관리 효율성과 내구성 위주 정서적 피로 누적
과도한 안내 방송 반복성 높은 소리 자극 집중력 저하, 피로 가중
시야 가림 구조물 광고판, 구조물 배치 방향 상실, 불안감 상승

 

기분이 좋아지는 지하철 내부 사진

4. 사람들의 기분이 달라지는 ‘좋은 역’은 무엇이 다를까?

서울 지하철에는 일부 ‘감성역’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서울숲역(분당선)**은 자연을 테마로 한 조형물과 화이트톤 조명이 설치되어
“마치 갤러리 같은 기분”을 만든다는 사용자 평가가 많다.
또한 경의중앙선 망우역은 유리벽과 채광을 통해 개방감을 높였고,
신논현역(9호선)은 밝은 간접조명과 부드러운 색채 설계로 "답답하지 않은 지하공간"을 구현한 대표적 사례다.

이런 역들은 공통적으로 다음 특징을 갖는다:

  •  시각적 리듬이 있는 조형/색상
  •  간접 조명 및 따뜻한 조도
  •  시야 확보, 동선 단순화
  •  휴식 가능 공간(간이 벤치, 조형물 활용)
  •  과도한 안내방송 자제 및 백색소음 감소

결국, 사람의 기분은 ‘공간의 질서’에 반응한다.
정돈된 동선, 예측 가능한 구조, 차분한 시각 자극은
출퇴근길 스트레스를 줄이고, 하루를 더 부드럽게 시작하게 만든다.

 

5. 지하철역 설계의 변화 가능성과 미래 방향

서울시는 최근 몇 년 간 일부 노선에 ‘심리적 쾌적성’을 고려한 리모델링을 시도 중이다.
예를 들어, 우이신설선은 신설 구간이므로 아예 처음부터
간접조명, 단순동선, 소음 완화 설계를 반영했다.
또한 **강남권역(삼성~청담 구간)**도 미래 리노베이션 시 ‘이용자 감정 반응’을 고려한
감정 기반 설계 프로토콜’이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 스웨덴 스톡홀름 지하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역’으로 미술작품과 색채 조화를 이룸
  • 싱가포르 MRT: 공기 질 관리, 조명 조절, 향기 시스템까지 도입
    심리-환경 통합 설계가 진행 중이다.

서울도 더 이상 ‘기능 중심’의 도시철도에서
‘감성 + 도시 경험 중심’의 도시철도로 진화할 준비가 필요하다.


6. 마치며, 지하철역은 도시의 얼굴이다

사람은 공간을 통해 감정을 느낀다.
하루에 두 번, 매일 마주치는 지하철역은 단지 이동수단의 거점이 아니라
사람의 정서적 패턴에 영향을 주는 반복적 환경이다.

서울 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정밀하고 효율적인 철도망이지만,
그만큼 이용자의 감정까지 정교하게 다뤄야 할 시대가 왔다.
복잡한 도시일수록, 공간은 기능을 넘어 감정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지하철역 설계는 도시가 사람에게 말하는 방식 중 하나다.
그리고 그 말투는, 부드러울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