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리를 건축으로 짓는 건축가, 쿠마 켄고
건축가 쿠마 켄고(Kengo Kuma)는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다.
그는 늘 "건축은 풍경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한 미학적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건축은 자연에 녹아들되, 자연과 싸우지 않으며,
재료 자체의 물성과 감각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쿠마 켄고는 시멘트와 유리 같은 무기질 재료보다는
나무, 돌, 흙, 종이, 직물 같은 유기적 재료를 주로 사용해왔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감각이 반응하는 건축’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그에게 건축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며,
공간은 이동의 흐름이 아니라 머무는 공기와 촉감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런 그의 손에서, 서울 한복판에 ‘소리의 공간’을 위한 특별한 건물이 하나 완성됐다.
그곳이 바로 오디움(ODIUM)이다.
2. 오디움은 왜 만들어졌는가?
오디움은 단순한 오디오 쇼룸이 아니다.
이곳은 음향을 위한 건축, 그리고 건축으로 번역된 감성을 실험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오디오갤러리’가
단순한 상품 전시장을 넘어, 사람이 ‘소리’를 공간 안에서 진정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철학으로 기획했다.
그래서 오디움은 소리의 흐름, 반사, 흡음, 잔향 같은 기술적 조건뿐 아니라
소리를 ‘감정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건축적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이때, 쿠마 켄고는 건축 설계자로 초대되었고,
그는 단순한 음향 건축이 아닌
감각과 기억, 시간의 흐름이 서린 공간으로서의 오디움을 제안했다.
3. 외관 – 돌을 겹겹이 쌓아 올린 듯한 시간의 표면
오디움의 외관은 도시 속에 갑자기 나타난 현무암 벽의 성채처럼 보인다.
실제로 외벽에는 제주산 현무암과 흡사한 느낌의 검회색 자연석이
수십 겹의 층으로 정갈하게 겹겹이 쌓여 있다.
이 외장재는 단순한 마감이 아니다.
바람에 닳은 벽, 시간이 지나 흔적이 남은 담장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었다.
이 겹침은 단지 시각적인 요소가 아니라,
소리를 공간으로 번역하려는 건축가의 장치다.
돌의 표면은 매끄럽지 않고,
각 층마다 미묘하게 서로 어긋나 있다.
그 불규칙한 결은 소리가 반사되거나 흡수되는 패턴을 미세하게 조절하며,
또한 보는 이에게 시간이 겹겹이 쌓인 공간에 들어서는 듯한 인상을 준다.
쿠마 켄고는 이 구조를 통해
'소리가 기억처럼 쌓이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4. 내부 – 빛, 침묵, 재료가 만든 ‘청각의 명상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외부의 소음은 급격히 사라진다.
내부는 거의 흡음실 수준으로 조용하게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 아니라,
벽과 바닥, 천장 모두에서 재료 자체가 소리를 흡수하거나 부드럽게 반사한다.
내부 공간은 조용한 미술관처럼 절제된 구조로 되어 있으며,
불필요한 장식이나 안내판, 상업적 그래픽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이 공간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공간이다.
천장은 높지 않지만, 빛은 천장을 타고 은은하게 스며든다.
인공조명조차도 강한 명도보다는
잔향처럼 퍼지는 간접 조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방문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호흡과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5. 건축 재료 – 감각을 위해 선택된 것들
오디움에서 사용된 주요 재료들은 모두
소리를 흘리게 하거나, 걸러내거나, 스며들게 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 외벽: 마감되지 않은 자연석 – 소리와 빛의 파동을 분절시킴
- 내부 벽면: 흡음 기능이 포함된 목재 패널 또는 섬유 텍스처
- 바닥: 천연 목재 또는 카펫 – 발소리와 진동을 최소화
- 천장: 음향 반사율을 계산한 다공성 설계
이는 전시된 오디오 기기들을 ‘음향적 정점’에서 들을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지만,
소리 그 자체보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한 건축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6. 오디움이 특별한 이유 – 도시 속 ‘청각적 고요’를 위한 건축
오디움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소음의 도시 한가운데에서,
아주 의도적으로 ‘침묵을 위한 공간’을 설계한 드문 건축물이다.
여기서의 침묵은 단순히 소음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침묵 속에서, 소리를 선택적으로 듣게 만드는 공간의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그 침묵은, 건축의 재료와 구조, 빛과 여백을 통해 만들어진다.
쿠마 켄고는 이 건물을 통해
"음악을 듣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음악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 철학은, 건물의 외형부터 내부의 공기까지
모두 치밀하게 반영되어 있으며
예매 방법 역시 1인 1매로 2주전에 예약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오디움 사전예약은 아직까지도 경쟁이 치열하니 미리 준비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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