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건축’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의외로 다양하다.
고요한 절제미, 자연과의 조화, 혹은 명상적인 분위기.
하지만 그것이 무채색의 노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절제된 공간인지,
아니면 목재와 종이창이 어우러진 따뜻한 목구조 건축인지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 대조적인 이미지를 대표하는 두 건축가가 있다.
한 사람은 침묵을 설계한 남자, 안도 다다오,
또 다른 한 사람은 자연을 끌어안는 공간을 만드는 쿠마 켄고다.
둘 다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이며,
현대 건축의 사유와 감성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건축의 역할’과 ‘재료의 언어’는 극명하게 다르다.
이 글은 그 두 사람의 철학과 작품,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는 공간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안도 다다오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건축가다.
정규 건축 교육을 받지 않았고, 권위적인 시스템 바깥에서 스스로 공간을 관찰하고 여행하며 건축을 익혔다.
그의 공간은 ‘정적(靜寂)’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대표작인 ‘물의 교회’는 건축과 자연, 신성과 물질 사이의 관계를 극한의 절제로 풀어낸 공간이다.
노출 콘크리트 벽 사이로 들어오는 자연광,
십자가 너머로 보이는 수면, 그리고 사방이 침묵으로 가득 찬 구조.
그는 건축을 통해 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신을 느끼는 감정의 여백’을 만들어준다.
안도는 종종 “건축은 빛과 그림자의 드라마를 만드는 일”이라 말했다.
그에게 콘크리트는 단지 차가운 재료가 아니라, 침묵을 담는 캔버스였다.
벽은 소리를 차단하고, 창은 빛을 유도하며, 바닥은 시간의 흐름을 흡수한다.
이러한 공간은 사람을 ‘외부 세계로부터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만드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쿠마 켄고는 도쿄 출신으로, 일본 건축의 전통과 현대를 잇는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안도 다다오와는 정반대로, 콘크리트보다 나무를, 견고함보다 숨쉬는 구조를,
조형성보다 일상성을 선택한 건축가다.
대표작인 ‘아사쿠사 문화관광센터’는 층층이 쌓인 목재 루버로 이뤄진 파사드가 인상적이다.
건물은 현대적이지만, 전통 한옥의 처마 구조를 계승한다.
또 다른 작품인 ‘고마츠 세라믹 미술관’은 지역에서 나는 목재와 돌을 활용하여
건축을 땅과 재료에 밀착시키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건축은 그 땅의 냄새를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보편적인 양식이 아니라
그 지역의 기억, 재료, 습기, 냄새, 사람과의 거리감을 반영해야
살아있는 건축이 된다는 것이다.
쿠마는 기후위기와 도시화 속에서 ‘경량 건축(Light Architecture)’을 주장한다.
가능한 한 가볍고, 지역에 맞는 재료를 쓰고,
재사용과 분해가 쉬운 구조를 만들며
건축이 자연의 일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안도 다다오와 쿠마 켄고는
같은 일본이라는 문화적 배경 안에 있음에도
건축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다.
가장 큰 차이는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공간’과
‘외부와 열려 있는 공간’의 차이다.
또 하나의 큰 차이는 ‘건축 재료에 대한 태도’다.
안도는 콘크리트라는 인공 재료를
정제되고, 통제된 방식으로 다룬다.
반면 쿠마는 자연 재료가 가진
비정형성과 불규칙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새로운 감성을 뽑아낸다.
한국 사회는 지금 빠르게 도시화되고 있고,
모든 건물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더 효율적으로, 더 고층으로 올라간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안도 다다오와 쿠마 켄고의 건축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묻는다.
“당신은 어떤 공간에서 진짜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가?”
두 사람의 철학은 모두 의미가 있다.
누군가는 ‘비워진 공간’에서 충만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자연과의 연결’ 속에서 위로를 받는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 도시의 건축은
단지 높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과 삶에 맞닿아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
안도 다다오와 쿠마 켄고처럼
건축을 ‘경험의 언어’로 해석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도시에선 보기 어려운, 고요한 빛의 공간입니다.
실제로 내부에 들어가면 자연광이 중심에 집중되며
바깥세상과 단절된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이 건물은 듣는 공간입니다.
건축이 ‘보는 것’에서 ‘느끼는 것’으로 전환되는 지점을 경험할 수 있어요.”
이 두 건축가는 서로 다른 언어로 건축을 이야기하지만, 그 공간에 직접 들어서면 공통된 감정이 느껴집니다.
고요하고 깊고, 사람을 위한 건축. 어느 날 하루 시간을 내어, 두 거장이 만든 이 작은 공간들을 직접 걸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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