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사회

왜 우리는 길을 걷다가 무심코 사진을 찍게 될까? 생각을 품은 도시 풍경의 설계된 장면들(feat.유현준 교수님)

silentko2531 2025. 6. 28. 14:00

1. 스쳐 지나가던 길에서, 우리는 왜 카메라를 꺼내게 될까?

일상 속의 산책길, 카페 가는 골목, 출근길의 횡단보도.
우리는 아주 특별하지 않은 순간에 문득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장면은 광고 촬영처럼 세팅되어 있지도 않고,
누가 봐도 유명한 관광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만큼은 내가 도시의 한 장면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감정을 자극한다.

왜 그럴까?
그건 단순히 풍경이 예뻐서가 아니다.
그 장면은 도시가 우연히 연출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주 정교하게 ‘의도된 구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2. 유현준 교수는 도시를 ‘연출된 무대’라고 말했다

건축가이자 도시공간 이론가 유현준 교수는 그의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도시는 무대이고, 사람은 배우다"라고 말한다.
도시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유도하고, 행동을 이끄는 장치라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공간 안에 들어서면 연기를 시작한다.

건축가는 그 연기의 톤과 방향을 결정짓는 무대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예쁘다’고 느끼는 도시 풍경은 사실 감정을 유도하기 위한 연출의 결과다.
무심코 사진을 찍게 되는 그 장면들은
빛, 거리감, 높낮이, 방향, 프레임 등 복합적 설계에 의해 완성된 장면이다.


3. 도시가 감정을 조율하는 방식 – 구도, 거리, 깊이

3-1. 건물 사이의 틈: 프레임을 만드는 풍경

유현준 교수는 “도시는 틈새에서 아름다움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좁은 골목 끝에 한옥 지붕이 걸려 있거나,
건물 사이로 남산타워가 어긋나게 보이는 풍경,
이건 전면의 스카이라인이 아니라 **‘틈이 만들어낸 시선의 창문’**이다.

사람의 시야는 160도지만,
사진은 4:3 혹은 16:9의 프레임이다.
즉, 사진을 찍는다는 건 시야를 의도적으로 잘라내는 행위이고,
그 잘라낸 구도 안에 ‘틈’이 있으면, 우리는 감정을 투사하게 된다.


3-2.  직선 vs 곡선: 걷는 속도를 조절하는 동선의 심리학

유현준 교수는 곡선형 동선이 사람을 ‘천천히 걷게 만든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청계천의 완만한 곡선 산책로,
연남동 경의선 숲길의 유기적 보행로 등은
걷는 이로 하여금 주변을 더 많이 바라보게 만든다.

걷는 속도가 느려지면,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결국 마음에 드는 장면 앞에선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이 사진을 찍는 순간이 된다.


3-3. 높낮이 차이: 감정을 위에서 내려다볼 때의 거리감

한남동이나 이태원 골목길은 평지가 아닌 언덕길 위에 있다.
그 길을 걷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작은 집들과 차들이 한 장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이런 시점의 변화는 감정적으로 ‘나만의 뷰’를 제공하고,
그것이 특별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은 충동으로 이어진다.


4. 서울 속의 설계된 장면들

서울엔 실제로도 의도적으로 ‘포토 스폿’을 고려한 도시 설계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건,
우리가 무심코 찍게 되는 장소 중 일부는
실제로 건축가나 도시계획자가 시선을 계산하고 만든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4-1.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Y자 골목

좁고 꺾인 골목 끝에 하나의 간판이 떠 있고,
벽면은 조명이 은은하게 비친다.
이 골목은 건물 배치와 간판의 위치가 미묘하게 시선의 흐름을 유도한다.
덕분에 걷던 사람은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꺼낸다.


4-2. 북촌 한옥마을 뷰포인트

3경, 4경, 5경 등으로 불리는 북촌 골목들은
사실상 프레임형 공간 설계의 전형이다.
한옥의 지붕선이 계단식으로 겹치고,
그 끝에 현대식 도심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장면은
건축적으로 **‘시간이 교차하는 구도’**를 만들어낸다.


4-3. 노들섬에서 바라보는 한강과 남산의 위치

유현준 교수는 유튜브에서
노들섬은 건물이 시선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게 설계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대로,
노들섬은 낮고 수평적이며, 조경과 전망이 부드럽게 연결된다.
그래서 이곳은 사진을 찍는 사람보다
자연스럽게 사진 속에 들어가게 되는 장소가 된다.


5. 결론 – 사진을 찍는 건 공간의 감정을 느꼈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사진을 찍는다.
그 중에는 여행지의 멋진 건물도 있고,
그저 빛이 예쁘게 드는 길거리의 장면도 있다.
그 모든 사진은 공간이 사람의 감정에 말을 걸었고,
사람이 그것에 반응했다는 기록
이다.

유현준 교수는 말한다:

“공간은 말을 하지 않지만, 사람에게 반응을 유도하는 힘이 있다.”

결국 도시 풍경 속 ‘무심코 찍은 사진’은
그 공간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건넸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 장면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공간을 설계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한 장면일 수 있다.

사진 한 장 뒤에 감춰진 도시의 의도,
그걸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도시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