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숲역 인근은 서울에서 가장 빠르게 분위기가 바뀐 동네 중 하나다.
이전까지만 해도 ‘성수의 그림자’ 정도로 불리던 이 지역이
이제는 ‘서울숲세로골목’이라는 이름까지 생겨날 정도로 하루에도 수십 명의 방문객이 몰리는 감성 공간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이 상권이 넓은 대로변이 아닌, 아주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안에 있다는 점이다.
지도 앱으로 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건물들 사이,
2~3층짜리 옛 빌라와 단독주택 사이에
왜 이렇게 많은 바(Bar), 카페, 디저트숍, 리빙 편집숍들이 들어서게 된 걸까?
이건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다.
건축적으로 보면, ‘작은 골목’이라는 도시의 틈이 만들어낸 공간적 기회다.
서울숲 옆 골목은 사람의 발걸음과 건축 구조가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미묘한 밀도와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숲세로골목에 위치한 대부분의 가게들은 신축 건물이 아니다.
대부분은 1990년대에 지어진 다세대주택, 2~3층짜리 단독주택, 혹은 옛 상가건물이다.
하지만 이 건물들은 지금,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외벽은 파스텔톤이나 노출 콘크리트로 덮였고,
낮은 층고를 활용해 오히려 아늑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지붕을 덮는 대신 천장을 노출해 층고감을 만들고,
기존 창문을 크게 확장해 골목을 향한 시선을 열었다.
즉, ‘헐고 다시 짓는 개발’이 아니라,
기존 골조와 구조를 최대한 살려 감각을 더한 방식이다.
이는 최근 젊은 건축가들과 공간 디자이너들이
‘절제된 개입’에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다.
지나치게 인위적인 새로움보다는,
시간의 흔적 위에 감각을 입히는 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왜 서울숲역 정중앙이 아니라, 서울숲역 ‘바로 옆 골목’에 이런 감성 공간이 몰려 있는 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그곳에 여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형 프랜차이즈와 오피스가 모이는 중심지는
이미 가격도 높고, 변화의 속도도 빠르다.
반면, 옆 골목은 비교적 낡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고,
임대료도 저렴했다.
하지만 ‘서울숲’이라는 초대형 공원이 근처에 있고,
성수역과도 도보 10분 거리.
입지적으로는 도심과 여유를 모두 가질 수 있는 최적지였던 셈이다.
공간 디자이너나 바 운영자, 1인 브랜드들이
이 골목을 눈여겨본 것도 이 때문이다.
낡은 집 하나를 개조하면
그 안에 독립적인 브랜드 세계를 담을 수 있었고, 이전과 다른 ‘틈새 상권’을 만들 수 있었다.
골목 구조 또한 중요했다.
이 골목은 차량보다 보행자 중심의 흐름을 갖고 있다.
직선보다는 곡선에 가깝고,
좁은 길목 사이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다닌다.
이러한 공간의 느슨한 밀도는
건축적으로는 불규칙한 동선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길이 곧 경험이 되고,
골목을 돌 때마다 새로운 입면이 나타난다.
서울숲 골목 상권의 공간들은
겉보기에 다양해 보이지만, 공통된 건축적 전략이 있다.
이러한 건축적 특징은 단지 공간의 외형을 넘어
사람들의 체류 경험을 설계하는 전략이다.
서울숲 골목 상권을 주도하는 주체는
대형 브랜드가 아니다.
작은 독립 운영자, 디자이너, 주거 리모델러, 개인작업자들이다.
이들은 공간을 브랜드처럼 만들되,
브랜드보다 감정을 앞세운다.
이런 철학은 단순한 상업적 공간이 아니라,
개인화된 감정 플랫폼으로서의 공간을 만든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 골목을 단지 ‘음식 먹는 곳’이 아니라
‘기억을 남기는 장소’로 인식하게 된다.
서울숲 골목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변화이자,
가장 밀도 높은 감각을 담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대규모 개발도, 천문학적 자본도 없이
리모델링과 감각, 건축적 동선 설계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앞으로도 이런 골목형 상권은 더 늘어날 것이다.
거대한 몰이 아니라,
좁은 골목과 낮은 건물에서
사람들은 더 진한 경험을 원하기 때문이다.
서울숲 옆 골목은
그 변화를 건축적으로 가장 먼저 구현해낸 공간 중 하나다.
그리고 지금,
이 변화는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산성교회, 계단 위에서 내려온 신앙 – 유현준 건축가가 설계한 도심 속 예배당 (0) | 2025.07.03 |
---|---|
“사람을 오래 붙잡는 공간엔 뭐가 다를까?” – 머무름을 유도하는 건축적 장치들 (0) | 2025.06.30 |
“왜 같은 20평인데 어떤 집은 넓어 보일까?” – 공간의 착시와 심리적 구조의 비밀 (0) | 2025.06.30 |
서울 사대문 안의 궁궐, 그 구조가 전하는 왕의 철학 (0) | 2025.06.28 |
왜 유럽 건물은 다닥다닥 붙어있고, 한국 건물은 떨어져 있을까? (1) | 2025.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