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부산, 대구, 인천.
대한민국의 주요 대도시 중심에 서면, 거대한 건물과 교통 체계,
그리고 빠르게 흐르는 사람들의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뭔가 결정적으로 비어 있다.
바로 ‘광장’이라는 머무는 공간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잠시 멈춰 쉴 수 있는 열린 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찾아보기 어렵다.
시청 앞 서울광장이 예외적으로 존재하지만,
그마저도 ‘집회’나 ‘공연’ 같은 목적 중심 공간으로만 기능할 뿐,
일상적인 휴식이나 모임의 장소로 사용되진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의 도시계획은 ‘이동’에 집중된 도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효율을 위해 만들어졌고,
거리는 자동차가 지배했으며,
보행자의 ‘정지’는 고려되지 않았다.
또한 한국의 근현대 도시 형성 과정은
식민지 시기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토지의 최대 수익 활용을 우선 가치로 삼아왔다.
광장 같은 ‘비수익 공간’은 개발에서 배제되기 쉬웠다.
그 결과 도시는 흘러가기만 하고,
그 속의 사람은 쉬어갈 틈을 잃었다.
유럽이나 남미 도시의 중심에는
항상 광장(Plaza, Square)이 존재한다.
로마의 나보나 광장, 마드리드의 솔 광장,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
이탈리아의 산 마르코 광장.
이들 장소는 단지 도시의 중심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광장은 때로는 시장이 되고,
때로는 집회, 시위, 연주회, 축제의 무대가 되며
평소에는 사람들의 산책, 휴식, 만남의 장소로 자연스럽게 기능한다.
목적이 없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특히 광장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공성’과 ‘체류를 유도하는 설계’다.
벤치, 조경, 분수, 가로등, 바닥의 재질까지
모두 사람의 시선과 머무름을 고려해 설계된다.
중세 시대의 성당 앞 광장은 종교의 중심이었고,
근대의 시민광장은 민주주의의 무대였다.
그리고 지금의 도시는 광장을 통해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고 있다.
공간은 사람의 속도를 결정한다.
멈출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면,
사람은 계속 걸어야 한다.
도시의 흐름은 점점 더 빨라지고,
사람들은 목적 없이 거리 위에 머물 수 없게 된다.
서울의 강남대로, 홍대입구, 여의도.
거대한 상권과 인파가 오가는 거리이지만,
그 중심에 앉아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
광장처럼 설계된 공간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건물 안’으로 숨어든다.
카페, 쇼핑몰, 지하철역 대합실 같은
사적인 공간에 기대어야만 쉬거나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결국,
도시에서 ‘공공의 감정 공유’가 사라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낯선 타인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도시는 교차하지만, 연결되지 않는다.
머무는 공간은 단순한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인식’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장소다.
그 공간이 사라지면, 도시의 감정도 함께 사라진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진짜 ‘광장’이 없는 것일까?
사람들은 그래도 어디선가 만나고, 대화하고, 머문다.
그 공간이 된 것이 바로 카페와 쇼핑몰이다.
스타벅스 2층, 백화점 중정, 대형 서점의 좌석.
이 모든 곳은 도시가 주지 못한 광장의 기능을 대신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공간에는 중요한 한계가 있다.
바로 ‘비용’이 있어야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카페는 앉기 위해 커피 한 잔을 주문해야 하며,
쇼핑몰의 소파는 결국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잠깐의 휴식처에 불과하다.
도시가 광장을 만들어주지 않으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적 공간에 들어가
돈을 지불하고 ‘머무름’을 구입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공공성과 사적 소비가 혼재된 도시를 만든다.
진짜 자유로운 체류 공간은 사라지고,
모든 만남은 상업의 프레임 안에서만 가능해진다.
게다가 이런 대체공간은 특정 계층에게만 열려 있다.
학생, 노인, 노숙자 등 소득이 낮은 시민들은 접근조차 어렵다.
이것이 ‘공공 공간의 부재’가 만드는 도시의 불평등 구조다.
광장은 단지 멋진 도시 경관이 아니다.
도시는 광장을 통해 자신의 속도와 감정을 조율하고,
시민은 그 안에서 관계와 기억을 만들어간다.
한국 도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에서
‘머무를 수 있는 도시’로의 전환이다.
한 사람, 한 대화, 한 감정을 위한 공간이
도로와 건물 사이에 스며들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도시에서의 삶’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