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 하디드 vs 렌조 피아노 조형의 극단과 절제의 미학, 두 거장의 건축 언어
1. 조형성이라는 질문 앞에서, 전혀 다른 답을 낸 두 사람
자하 하디드(Zaha Hadid)와 렌조 피아노(Renzo Piano)는
모두 세계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두 사람 모두 프리츠커 상 수상자이며,
전 세계에 걸쳐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당대의 건축 언어를 새롭게 정의해왔다.
하지만 이들이 공간을 해석하고 설계하는 방식은
마치 서로 정반대의 세계에서 온 것처럼 느껴진다.
자하는 조형적 폭발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축가였다.
曲선과 흐름, 중력을 무시한 듯한 과감한 매스,
그리고 건축을 예술처럼 다룬 그녀의 철학은
건축계에 충격에 가까운 인상을 남겼다.
반면 렌조 피아노는 침묵과 절제를 통해 공간을 설명한 건축가다.
그는 도시와 조화를 이루는 가벼운 구조, 빛을 끌어들이는 디테일,
소재의 정직함을 가장 정교하게 다룬 장인으로 평가받는다.
두 건축가는 모두 미래를 이야기했지만,
한 사람은 도시를 휘게 했고,
또 다른 사람은 도시와 나란히 걸었다.
그 차이가 만들어낸 건축 언어의 세계는
우리에게 조형성과 공공성 사이의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2. 자하 하디드 – 선(線)을 해체한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1950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급진적 실험을 이어왔다.
초기에는 건축계 주류로부터 “설계는 뛰어나지만 시공이 불가능하다”는 평을 들었고,
그녀의 드로잉은 마치 미래 도시의 그래픽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술이 진화하면서 자하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녀는 21세기 건축의 새로운 얼굴로 급부상한다.
자하의 건축은 언제나 고정된 시선을 거부했다.
전통적인 직각과 대칭은 사라졌고,
대신 유체 형태, 흐름, 기하학적 분해가 그 자리를 채웠다.
대표작인 광저우 오페라하우스, 하이디 알라이아 미술관, 런던의 아쿠아틱 센터 등은
마치 하나의 매스가 유영하듯 떠 있으며,
건축과 땅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그녀는 “나는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흐르게 한다”고 말했다.
이는 자하 하디드의 건축이
구조물 그 자체보다, 움직임의 흔적을 공간화한 것이란 의미다.
그녀의 작품은 종종 비효율적이고, 시공이 까다롭고, 비용이 높다는 비판도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하의 건축은
'건축은 감정과 미래에 반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관철시킨다.
3. 렌조 피아노 – 빛, 공기, 그리고 섬세한 기술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1937년 이탈리아 제노바 출생이다.
자하와는 다르게, 그는 공학자이자 건축가라는 정체성이 강했다.
건축은 조형물이 아니라 도시 속에서 기능하고 소통해야 하는 구조물이라는
철저한 공공성 중심의 태도를 유지해왔다.
피아노는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빛, 투명성, 경량성, 정직한 구조를 꼽았다.
그에게 건축은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질감’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대표작인 파리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는
공공시설이 어떻게 도시와 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이후 지은 뉴욕 타임스 빌딩, 로잔 EPFL의 러닝센터,
LA의 아카데미 영화박물관 등은
모두 도시 맥락 안에서 조용하지만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피아노는 건축에서 조용한 긴장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곡선을 쓰지 않고도 공간에 리듬을 만들며,
철과 유리로도 따뜻한 감정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가 자하 하디드와 가장 다른 점은
건축을 ‘시위’가 아닌 ‘대화’로 풀어낸다는 것이다.
그의 건축은 주목받기보단 사라질수록 공간과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4. 조형과 절제, 무엇이 도시를 움직이는가?
자하 하디드와 렌조 피아노의 건축은
서로를 반사시키며 더 선명해진다.
한 명은 감각을 폭발시키고,
다른 한 명은 감각을 조율한다.
둘 다 인간의 감정을 담되,
그 방식이 전혀 다르다.
자하는 건축을 통해 ‘가능성’을 확장시켰고,
피아노는 건축을 통해 ‘균형’을 회복시켰다.
이 차이는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준다.
- 자하의 건축은 도시에 감각적 긴장을 부여하며,
사람들이 공간에 반응하도록 만든다.
마치 도심 속 조각물처럼, 사람들은 그 주변을 걷고 바라보며 감정을 느낀다. - 반면 피아노의 건축은 도시에 여유와 명료함을 제공한다.
그는 도시의 맥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그 공간이 이전보다 조금 더 밝고, 공기 흐름이 부드러워지게 만든다.
둘 다 필요하다.
도시는 때로 강렬한 자극이 필요하고,
때로는 조용한 배려가 필요하다.
5. 마치며 – 당신의 도시엔 누구의 건축이 어울리는가?
자하 하디드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녀의 건축은 미래 도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곡선은 인간의 직선을 해체하며
감정적이고 관능적인 도시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렌조 피아노는 여전히 살아있는 ‘건축의 철학자’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도시에 질서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조용한 편안함을 제공한다.
도시란 누군가의 말투가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자하의 도시엔 감탄이 있고,
피아노의 도시엔 숨 쉴 여백이 있다.
당신이 설계하고 싶은 도시는
곡선과 곡선이 충돌하는 파동인가,
아니면 선과 선이 겹쳐진 투명한 조화인가?
건축가는 늘 그 질문 앞에 선다.
그리고 그 답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표정 속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