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은 왜 점점 더 중요한 공간이 될까?– 하늘 위의 방, 도시의 새로운 얼굴
1. 옥상은 언제부터 ‘공간’이 되었을까?
예전의 옥상은 아무도 가지 않았다.
빨래를 널거나, 물탱크를 놓거나, 비둘기가 머무는 공간이었고,
사람들은 ‘옥상’이라는 단어를 건물의 기능적 끝자락쯤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지금, 옥상은 도시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루프탑 카페, 옥상 텃밭, 하늘 정원, 야외 공연장까지.
이제 사람들은 옥상 위에서 일하고, 놀고, 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왜일까?
왜 지금, 우리는 다시 옥상을 주목하게 되었을까?
그 변화는 단순히 유행이 아니다.
도시 구조와 사람들의 공간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도시에서 옥상은
‘잉여 공간’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자원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2. 도시는 평면이 아니다 – 수직적 삶의 시작
현대 도시는 평면이 아닌 입체로 설계된다.
건물이 높아지고, 사람들은 더 이상 ‘옆집’보다는 ‘윗집’과 ‘아랫집’에 산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사는 공간이 수직적으로 확장되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 수직 구조 안에서 사람들의 체류 공간이 계속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1층은 주차장, 도로, 로비로 채워졌고
2~10층은 사무실, 주거, 상업시설로 채워진다.
사람들이 목적 없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위로’ 눈을 돌린다.
옥상은 이 도시 구조에서 유일하게 비어 있는 층이다.
그곳은 공중에 떠 있는, 목적 없는 공간이다.
바로 그 점이 옥상의 가능성을 폭발적으로 넓히는 요인이 된다.
3. 옥상의 재해석 – 기능을 넘어 감각의 공간으로
건축에서 옥상은 전통적으로 ‘기능적 마감재’에 불과했다.
방수, 단열, 설비 점검을 위한 공간.
하지만 최근 들어 옥상은 사람이 체류할 수 있는 완성된 공간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는 루프탑 카페다.
서울 한남동이나 연남동, 부산 해운대 인근의 루프탑 공간은
더 이상 ‘건물 끝’이 아니라
도시의 가장 높은 레벨에서 여유를 경험할 수 있는 감각적 장소로 재탄생하고 있다.
건축가 입장에서도 옥상은 더 이상 방치해둘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옥상은 ‘도시를 위에서 바라보는 조망’, ‘개방감’, ‘하늘과의 거리’라는
다른 어떤 공간도 줄 수 없는 심리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옥상은 바닥 면적을 더 이상 넓힐 수 없는 도심에서
새로운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여유 공간이 된다.
그래서 옥상은 점점 더 ‘도심 속 마지막 땅’으로 주목받는다.
4. 도시가 옥상을 활용해야 하는 이유
옥상의 중요성은 단지 개인의 여가 공간 차원을 넘어선다.
도시계획적 관점에서도 옥상은
복잡한 지상 공간을 보완하는 대안적 도시 인프라가 될 수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그 가능성은 명확해진다:
- 도쿄: 초등학교 옥상에 정원을 조성해 아이들의 체육 수업과 놀이 공간으로 활용
- 뉴욕: 맨해튼 루프탑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도심 식량 자급을 시도
- 서울: 은평구, 마포구 일부 공공청사에 시민을 위한 루프탑 정원 설치
- 싱가포르: 건축법 자체에 옥상 녹화 비율을 의무화
특히 기후위기와 폭염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옥상 녹화와 옥상 쿨링 시스템은 도시 열섬 현상을 줄이는 실질적 전략이 되고 있다.
그리고 팬데믹 이후, 개방형 공공 공간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옥상은 단순한 개인의 프라이빗 공간을 넘어,
공공이 함께 사용하는 ‘공중 광장’이자 ‘수직적 공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5. 한국 도시에서 옥상이 겪는 현실적 한계
하지만 여전히 한국 도시의 옥상은
‘활용 대상’이라기보다는 ‘방치된 구조물’에 가깝다.
첫째, 건축법 상 옥상을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허용하기 위한
용도 변경, 구조 안전 진단, 방화 기준 등의 제약이 많다.
둘째, 다세대나 오피스 건물에서는 옥상의 소유권 문제가 발생한다.
셋째, 옥상을 정원이나 카페 등으로 만들기 위해선
추가 하중에 대한 구조 보강이 필요한데,
이는 비용 문제로 이어진다.
게다가 많은 건물주는
옥상을 임대하거나 수익화하지 못하면
굳이 관리하거나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옥상은 가능성은 크지만
아직도 도시와 건축가, 행정이 함께 풀어야 할
복합적인 과제를 안고 있는 공간이다.
6. 옥상은 더 이상 ‘남는 공간’이 아니다
도시가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높은 곳에서의 여유를 원한다.
수평적인 거리는 부족하고,
지상은 교통과 기능으로 이미 가득 차 있다.
옥상은 그 모든 틈 사이에서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이미 많은 건축가들이
옥상을 제4의 공간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거실도 아니고, 방도 아니고, 발코니도 아닌
‘공중의 안락함’을 설계하는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옥상을 더 많이 짓는 것이 아니라
‘옥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일이다.
그 공간은 단지 건물의 끝이 아니라,
도시의 다음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