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3, 그곳은 누구의 시선인가― 건축이 만든 감시와 권력의 드라마
1. 오징어게임은 어떻게 ‘공간으로 권력을 설계’했는가?
《오징어게임》은 스토리만큼이나 공간의 설계가 눈에 띄는 드라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시리즈를 ‘사회 풍자’나 ‘극단적 서바이벌’로 기억하지만,
건축가의 눈으로 보면, 이 작품은 구조와 위계, 시선과 감정의 흐름을 정교하게 설계한 건축 드라마다.
참가자는 항상 아래에 있고, 진행자와 관리자, 그리고 설계자는 그들을 위에서 내려다본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감시의 시선, 가려진 복도와 미로 같은 계단,
복잡하게 얽힌 통로들 속에서 참가자들은 끝없이 감시당하고 조종당한다.
이런 구조는 단지 ‘배경’이 아니다.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 공간은 가장 먼저 말을 거는 주체다.
누가 어디에 있는가,
어떤 위치에서 누구를 바라보는가.
이러한 위치 선정과 동선의 차이가
권력의 흐름을 결정하고,
감정의 방향을 조정한다.
2. 유현준 교수는 왜 이 드라마를 건축으로 해석했는가
홍익대학교 유현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오징어게임을 “감시가 구조로 구현된 공간”이라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단지 드라마 속의 특별한 연출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도시와 매우 닮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진행자는 항상 위에 있다. 참가자는 아래에 있고,
공간의 배치가 사람들의 위치를 정한다.
우리는 늘 ‘위에 있는 자’를 따르게 되어 있다.”
이 말은 단순히 높낮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의 흐름이 권력의 흐름이 된다는 뜻이다.
이 시선 구조는
건축가 제러미 벤담이 제안했던 ‘파놉티콘 감옥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중앙의 감시자가 사방을 볼 수 있게 만들어진 공간,
그 안에서는 누가 보고 있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를 통제하게 된다.
오징어게임은 이 감시 구조를 현대적으로 각색해
참가자의 모든 행동이 보이되, 감시자가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설계된다.
건축은 여기서 도구가 아니라,
심리 조작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벽은 무표정하고, 계단은 끝없이 반복되며,
통로는 규칙 없이 이어져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든다.
3. 공간은 어떻게 사람의 감정을 설계하는가?
《오징어게임》의 공간은 기하학적이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패턴,
색과 조형이 주는 비현실감,
그리고 그 속에 놓인 사람들.
이런 구성은 시청자에게 불안을 자극한다.
특히 드라마의 상징처럼 쓰이는 계단 구조는
마치 미로 같다.
복도는 얕은 각도로 꼬여 있고,
사방이 막혀 있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쉽게 알 수 없다.
참가자들은 이 구조 안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설계자가 지정한 루트 외에는 선택권이 없다.
그들은 걷지만, 자유로운 움직임이 아닌 유도된 흐름 속에 갇혀 있는 존재다.
건축은 이처럼 감정과 움직임을 동시에 제어한다.
복도는 좁고 길게 만들어지고,
방은 네모나게 막혀 있으며,
천장은 낮아 억압감을 준다.
빛은 창을 통해 자연스럽게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인공적인 조명만이
색을 비틀고, 공간의 감각을 흐리게 만든다.
빛과 시선, 재료와 소리,
이 모든 것이 감정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4. 왜 사람들은 그 구조에 적응하게 되는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무서운 지점은
사람들이 그 구조에 적응해 간다는 사실이다.
첫 게임에서 충격을 받은 참가자들은
게임을 중단시키고 돌아가지만,
곧 자발적으로 다시 그 공간으로 돌아온다.
그 공간은 감금과 죽음의 공간이지만,
바깥세상보다 더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유현준 교수는 이를
“우리가 이미 그런 구조 안에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학교, 병원, 회사, 군대 등
우리가 거쳐온 모든 제도가
비슷한 감시 구조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 학교는 일렬로 책상을 두고 한 방향을 바라보게 만든다.
- 회사는 위에서 직원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 병원은 의사가 위에 있고, 환자는 침대에 누워 있다.
- 군대는 상명하복의 수직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이처럼 우리는 상하 구조와 감시의 시선에 익숙해져 있고,
그 안에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안정감을 찾는다.
오징어게임의 참가자들은 그 구조에 반발하다가도
다시 돌아와 질서를 받아들인다.
건축은 이 순간,
심리적 구조의 외피로 작동한다.
5. 색, 재료, 높이… 모든 것이 통제 장치다
오징어게임의 색채 설계는 매우 정교하다.
초록색 트레이닝복,
핑크색 진행복,
파스텔 톤의 벽면,
회색 철제 구조물.
이 색들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감정의 조절 장치다.
참가자들이 입은 초록색은
학생복과 같은 통일성과 순응성을 상징하고,
진행자들의 핑크색은
‘귀엽지만 차가운 권위’를 표현한다.
이런 대비는 공간 속에서
역설적인 긴장감을 만든다.
재료 또한 철제, 콘크리트, 플라스틱처럼
차갑고 딱딱한 재질로만 이루어져 있다.
여기엔 나무의 온기도, 천의 부드러움도 없다.
그 안에서는 감정을 숨길 수 없고,
모든 것이 노출된다.
건축은 이렇게 사람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겨눈다.
6. 감시는 보이지 않아야 더 무섭다
감시 카메라는 잘 보이지 않는다.
누가 어디서 보고 있는지,
참가자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본능적으로
‘누군가 보고 있다’는 걸 안다.
이때 감시는 카메라가 아니라,
공간 자체로 작동한다.
건축은 이 시점에서
기능이 아니라,
심리적 구조물로 완성된다.
《오징어게임》은 감시자가 눈에 띄지 않도록 설계된 구조를 통해
참가자들이 스스로를 통제하게 만든다.
그들은 단순히 목숨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 공간은 철저히 계산된
심리의 실험실이다.
7. 마치며 – 우리는 어떤 구조 안에 살고 있는가?
《오징어게임3》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다.
그것은 구조에 길들여진 인간의 선택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공간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감정과 행동을 유도하는 프레임이다.
유현준 교수는 그 공간을 읽는 법을 알려준다.
높이, 시선, 동선, 재료, 색.
모든 것이 하나의 메시지로 작동할 수 있다면,
그 공간은 건축물이 아니라 이야기를 설계하는 도구가 된다.
《오징어게임》의 진짜 설계자는
게임의 창시자가 아니라,
그 구조를 설계한 건축가들일지 모른다.
이 드라마를 보며 가장 무서운 점은
“그게 허구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익숙한 구조”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