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디자인

산성교회, 계단 위에서 내려온 신앙 – 유현준 건축가가 설계한 도심 속 예배당

silentko2531 2025. 7. 3. 06:56

유현준 교수가 설계한 산성교회 정면 사진

1. 교회는 왜 늘 ‘올라가야만’ 했을까?

도심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종교시설 중 하나가 교회다. 하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교회의 이미지에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대부분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고, 넓은 계단을 통해 접근해야 하며, 외부와는 어느 정도 단절된 구조를 지닌다. 이 구조는 마치 하늘에 가까워지기 위해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러한 전통적인 교회 건축은 ‘신성함’과 ‘거룩함’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는 과거와 다른 형태로 진화하고 있고, 사람들의 일상과 삶의 패턴 또한 크게 바뀌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 속에서, 교회가 여전히 계단 위에 고립되어 있어야 할까?

유현준 교수는 이 질문에서부터 산성교회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도시와 교회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며, ‘계단 없는 교회’, ‘도심 속 열린 교회’를 설계했다. 신앙을 위한 공간이 세상과 단절된 상징이 아니라, 일상 속 감정과 교차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건축으로 실현한 것이다.


2. 건축이 말하는 신앙 – 계단 없는 교회라는 개념의 전환

산성교회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의 주거지역 안에 위치하고 있다. 전통적인 종교시설이 도시의 가장자리에 위치하거나 단절된 공간 안에서 스스로를 성역화하는 것과 달리, 산성교회는 도시의 흐름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듯 놓여 있다.

유현준 교수는 산성교회를 설계하며 “교회는 계단 위에 있어야 한다”는 오랜 관념을 의도적으로 거부했다. 대신 그는 보행자와 도시, 일상과 종교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산성교회의 진입 동선은 계단이 아니라,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산책길 같은 구조다. 이는 도시 속 사람들이 부담 없이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의 심리적 문턱을 낮추기 위한 시도다.

교회 입구는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수평으로 이어지는 연결 통로처럼 느껴진다. 거리에서 시작된 사람의 동선은 경사와 건물의 흐름을 따라 내부로 자연스럽게 진입한다. 이로써 산성교회는 신자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으로서의 건축적 정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3. 내부 공간의 구조 – 건축 전체가 하나의 예배가 된다

유현준 교수는 건축 설계에 있어 ‘동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산성교회의 내부는 단순히 예배당과 부속 공간의 나열이 아니라, 전체 건축이 하나의 감정 흐름으로 연결된 경험 구조다. 사람이 들어서서 걷고, 머무르고, 올라가며 마주치는 빛과 그림자, 벽면의 재료, 공간의 높낮이 등 모든 요소는 설교나 찬송보다 더 강한 감정을 전달한다.

내부 마감재는 절제된 노출 콘크리트와 목재가 주를 이룬다. 인공 조명이 아닌 자연광이 주된 조명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햇빛의 방향과 색감이 예배당의 분위기를 바꾼다. 특히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줄기는 종교적 상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장치이자, 방문자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건축적 설교’로 기능한다.

유 교수는 “빛이 설교를 하고, 그림자가 기도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장식이 없는 이 교회는 오히려 더 깊은 감정을 유도한다. 소리를 극도로 흡수하는 재료, 빛이 흘러드는 천장 구조, 일정한 리듬으로 반복되는 계단 높이 등은 건축 자체가 예배의 도구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4. 도시와의 접점 – 교회를 공공 공간으로 확장시키다

산성교회가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열림’이다. 단순히 신자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도시 속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열린 설계가 적용되었다. 1층은 카페와 갤러리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 일반 시민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이곳은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머물 수 있는 장소이며, 교회가 아닌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기능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를 갖는다.

외부에서 내부로 진입하는 통로는 담장 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주변 골목길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는 기존의 폐쇄적 종교시설이 지닌 경계선을 허물고, 건축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산성교회는 신앙의 중심이 아닌, 도시와의 접점에서 새로운 건축적 질문을 던지는 구조다.


5. 유현준 교수의 건축 철학 – 사람 중심의 공간, 감정 중심의 설계

유현준 교수는 단순히 ‘건물’을 설계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의 동선과 감정이 교차하는 공간 구조를 만드는 데 관심이 깊다. 특히 산성교회에서는 그의 철학이 매우 명확하게 드러난다. 신앙은 감정의 문제이고, 감정은 공간 속에서 흐른다. 그러므로 교회는 높은 곳에 있거나 거룩한 장식으로 가득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일상에 가까운 구조, 감정이 쉬어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더는 ‘특별한 건물’이 아니라, 누구나 걸어들어가고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일상의 일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산성교회는 증명하고 있다. 신앙은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걷는 동안 느끼는 감정으로 전달될 수 있으며, 건축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다.


6. 마치며 – 당신이 직접 걸어봐야 할 교회

산성교회는 그저 종교시설이 아니다. 이곳은 도시 속 한 사람이 걸어들어가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빛을 따라 올라가며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심리적 장치이자 건축적 위로의 공간이다.

높은 계단도, 거대한 십자가도 없지만, 이 교회는 걷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신앙이란 무엇인가?”, “당신에게 공간이란 어떤 감정을 줄 수 있는가?”
도시 한가운데 놓인 이 건축은 그 자체로 감정의 흐름이자, 건축적 해석이 담긴 메시지다.

한 번쯤 직접 걸어가서, 공간이 주는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기를 추천한다.
그것이 신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