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칸과 미스 반 데어 로에, 절제된 건축 안에 담긴 완전히 다른 철학
1. 절제된 아름다움 속, 서로 다른 건축의 태도
건축은 언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건축물은 침묵 속에서 울림을 준다.
루이스 칸(Louis Kahn)과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는
그 울림을 가장 정제된 형태로 표현한 두 건축가였다.
두 사람 모두 '절제'를 핵심 가치로 삼았다.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내고,
형태와 구조, 재료의 본질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들이 도달한 건축의 세계는 극명히 달랐다.
루이스 칸은 건축을 "빛과 그림자의 시(詩)"로 만들었다.
그에게 건축은 단순히 서 있는 구조물이 아니라,
영혼이 깃들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반면,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건축을 “구조와 질서의 언어”로 여겼다.
그는 ‘Less is more(적을수록 많다)’는 철학 아래,
투명함과 규칙, 그리고 정제된 기능을 추구했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덜어냄으로써 더욱 깊은 것을 전달’했다.
2. 루이스 칸 – 공간은 침묵하며 말한다
루이스 칸(1901–1974)은 미국에서 활동했지만,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 건축의 정신을 동경했다.
그는 돌과 벽돌, 빛이라는 전통적 재료를 통해
건축의 원형(Archetype)을 다시 불러오려 했다.
“벽돌에게 ‘무엇이 되고 싶니?’라고 물어봐야 한다.”
– 루이스 칸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1982)은
빛과 그림자, 실린더와 정사각형,
거대한 벽 속의 오프닝(개구부)이 만드는 신성한 침묵의 공간이다.
이 건물은 단순한 정치 건물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의식의 장소’처럼 다가온다.
칸은 빛을 단지 조명이 아닌 존재의 증명으로 생각했다.
“빛은 건축을 만든다”는 그의 철학은
‘보여지는 공간’보다 ‘느껴지는 공간’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소크 생물학 연구소는
바다로 열린 중정을 중심으로
빛이 실험실 안까지 깊이 들어오게 설계되어 있다.
이 빛은 과학자들의 사고를 비추는
무형의 구조물처럼 존재한다.
루이스 칸에게 건축은
기능보다 정신성, 영성, 존엄성을 담는 그릇이었다.
공간이 침묵하면서도, 그 자체로 말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3. 미스 반 데어 로에 – 질서와 투명함의 건축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는
독일 출신으로, 근대 건축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이기도 하며,
기능주의와 현대적 모더니즘 건축의 기초를 다졌다.
“건축은 진실해야 한다. 구조는 드러나야 한다.”
– 미스 반 데어 로에
그가 말하는 '진실'은
장식 없는 기하학, 노출된 철골 구조,
유리와 강철의 투명성이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929)은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다.
벽은 최소화되고, 재료는 대리석과 유리, 강철이 주를 이룬다.
이 파빌리온은 공간 자체가 명확한 흐름을 가지며,
빛은 모든 면에 반사되어 경계 없이 흐른다.
이 건물은 건축이 얼마나 가볍고 유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도였다.
또한 그의 대표작 시그램 빌딩(1958, 뉴욕)은
고층 유리 커튼월 구조의 전형으로,
현대 오피스 빌딩의 원형이 되었다.
미스는 구조를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철근과 유리, 골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건축의 순수함을 강조했다.
그의 건축은 이성과 질서, 통제의 미학이다.
루이스 칸이 감정을 수직적으로 쌓았다면,
미스는 기능과 질서를 수평적으로 펼쳐낸 셈이다.
4. 공간의 본질을 묻는 두 개의 방식
이 두 거장은 건축을 극도로 단순화한 점에서는 닮았지만,
공간의 본질을 해석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중심 개념 | 정신성과 빛 | 질서와 투명함 |
재료 사용 | 벽돌, 콘크리트, 자연광 | 유리, 강철, 인공광 |
공간감 | 무게감 있고 묵직함 | 가볍고 유동적 |
구조 | 폐쇄적 중정 구조 | 열린 평면 |
목적 | 고요한 명상과 존엄 | 기능성과 반복 |
루이스 칸은 공간을 통해 사유와 명상을 유도했다.
그는 건축이 인간에게 '존재의 이유'를 묻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봤다.
반면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건축이 산업화된 삶의 질서를 만들고,
모든 사람이 같은 기준에서 편안함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한 사람은 내면으로 침잠하고,
다른 한 사람은 도시를 투명하게 만든다.
같은 건축이지만, 완전히 다른 대답이다.
5.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이어가야 할까
현대 도시에서는 이 두 사람의 영향이 여전히 강력하다.
도시의 고층 빌딩은 대부분 미스의 철학을 따르고 있으며,
박물관이나 도서관, 종교시설에서는 루이스 칸의 명상적 감성이 살아 있다.
건축가들이 점점 재료와 비용의 한계에 부딪히는 시대에,
두 사람이 남긴 절제의 미학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루이스 칸이 우리에게 말한다:
“빛을 들이는 방향 하나로 공간의 감정은 바뀔 수 있다.”
미스는 다른 방식으로 응답한다:
“그 감정은 구조가 얼마나 솔직한가에 달려 있다.”
둘의 철학은 대립이 아니라, 지향점의 차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건축가는
그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