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홍철이 반한 스위스 마을, 왜 그렇게 아름다울까?”
1. 스위스 마을을 처음 본 사람의 공통된 반응
처음 스위스에 도착한 사람 대부분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
작은 기차역 하나에도 스며든 따뜻한 색감,
모퉁이를 돌면 나오는 목조 건물과 화단.
어딜 가든 “이건 진짜 그림 같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는 그 마을이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색이 예쁘다고 말하고,
풍경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감탄의 본질은
“도시가 사람을 배려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노홍철 씨의 유튜브 영상에서도
그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들을 걸으며 반복해서 말한다.
“여긴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그 말은 곧, 스위스의 마을이 단지 예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정답에 가까운 환경’을 제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2. 스위스의 ‘작은 마을’은 어떻게 아름다움을 설계했는가?
스위스 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스케일의 절제다.
건물은 높지 않고, 대부분 3층 이하로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하나의 마을에 초고층 건물이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모든 건축물이 마치 한 세트처럼 통일감을 갖고 있다.
이는 자연과 건축이 충돌하지 않도록 도시계획에서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체르마트(Zermatt)는 마을 전체가 자동차 출입 금지다.
마을 내 이동은 전기차나 도보가 기본이며,
그 덕에 도시가 만들어내는 ‘소음과 매연’이 차단된다.
결과적으로 사람의 감각은 더욱 예민해지고,
풍경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또한 스위스 마을은 재료와 색에 대한 규제가 강력하다.
벽돌, 석재, 목재 같은 자연 재료가 대부분이며,
집마다 알록달록한 화분이나 창문 장식이 더해진다.
이것은 단순히 미적인 취향의 결과가 아니라,
사람이 살고 싶게 만드는 감정적 설계다.
한 마디로, 이 마을들은 ‘인간의 속도와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길의 폭, 집의 높이, 간판의 위치, 조명의 밝기 모두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은
‘존중받고 있다’는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다.
3. 우리 도시는 왜 그런 감정을 주지 못할까?
반대로 한국의 도시는 어떨까?
서울 시내를 걷다 보면,
건물마다 간판은 크고,
높이는 들쑥날쑥하며,
색상과 형태는 충돌한다.
길은 넓지만 걷기 불편하고,
건물은 화려하지만 시선이 피곤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 도시 대부분은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로는 자동차 중심으로 설계되고,
건물은 임대 수익을 최우선으로 고려된다.
베란다 대신 발코니가 사라지고,
공원보다 주차장이 많다.
모든 요소가 ‘기능성’과 ‘개발 이익’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사람의 감정과 속도는 밀려난다.
그 결과, 걷는 것이 불편하고,
쉬는 곳은 없으며,
건축물은 '말을 거는 대신 벽이 된다.'
4. 건축과 도시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스위스 마을의 진짜 아름다움은
풍경 자체가 아니라,
그 풍경 안에 사람이 들어설 수 있도록 준비된 공간이라는 점이다.
건축은 결국,
공간을 통해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누군가는 사람을 위에서 내려다보게 하고,
누군가는 사람과 눈을 맞추게 한다.
누군가는 직선과 유리로 감정을 차단하고,
누군가는 목재와 곡선으로 마음을 풀어준다.
건축가의 의도가 어떤 방식으로 공간에 구현되느냐에 따라
사람은 그곳에 머무르거나, 떠나거나를 결정한다.
스위스 마을은 그 선택지에서 ‘머무는 곳’을 택한다.
사람들이 괜히 벤치에 앉고,
괜히 아이스크림을 들고 거리를 걷는 이유는
그 마을이 이미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된 감정의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5. 마치며 – 아름다움은 배려로 완성된다
노홍철 씨의 여행 영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그가 혼자 마을 골목을 걸으며 말없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장면만으로도
“이 도시는 사람을 생각했구나”라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건축은 시선을 설계하는 일이고,
도시는 속도를 조절하는 기술이다.
스위스는 그 둘을 모두 잘 알고 있다.
우리 도시도 언젠가
사람이 걷고 싶고,
머무르고 싶고,
감탄하고 싶어지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시작은,
건축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다시 묻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